정신과 치료일지

열두 번째 진료

밑빠진독Hole in a Jar 2020. 10. 16. 21:25

요즘 내가 하는 것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균형 잡기'다. 나는 지레 걱정하는 버릇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늘 최악을 상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 상상만큼 실제 상황이 나쁘지는 않을 때가 더 많고, 나쁜 일도 어떻게든 지나가기 마련인 것이다. 요즘은 내일의 걱정을 오늘 당겨서 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일이 되면 내일의 내가 알아서 걱정하고 대처하겠지만, 오늘의 나는 내일의 일에 대해 걱정만 할 뿐이지 대처할 수 없으니까. 오늘의 나는 내일을 살아갈 힘을 비축하고 밤이 되면 잘 자 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적정선을 찾고 기울어진 것을 바로잡는다. 너무 늦게 자는 습관도 아주 오래되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당기고 있고 요즘은 대체로 이르면 12시 반에는 잠든다. 늦게 잘 때는 2시를 넘기기도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을 수는 없고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은 가라앉히려고 한다.

 

지난번 상담 후에 느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정말 힘들고 많이 흔들릴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는 잘 헤쳐 나온 것을 보니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해 과소평가하던 것들을 많이 회복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아직도 회복할 것이 남은 모양이라고. 그렇게 힘든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무거운 기분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스스로 마주하고 뛰어넘겠다고 결심한 것 자체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감정적인 동요가 없지는 않았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눈물이 날 때도 있었고(의외로 흐를 정도로 나진 않았다) 잠이 얕아지고 몇 번씩 깼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이건 어려움을 어려워하지 않는 태도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공부를 하다 보면 난해한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때가 있다. 그 책을 펼치고 읽어보고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서 어려워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반면 그 책이 어려울까 봐 책을 펼쳐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어려움을 어려워하는 것이다. 아무리 난해한 책도 어떻게든 읽어보고 다시 반복하면 조금이라도 나와 맞닿는 부분을 발견할 가능성이 생기지만 펼치지도 못한다면 그 가능성은 영영 닫힌 채 머물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살아왔고 잠들고 깨는 것조차 어려워했지만 지금은 수면의 질이 나쁘거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것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는 오늘도 수면위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내일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내용을 어려워하더라도 책의 표지를 들추는 것까지 어려워하지는 않으려 한다. 또한 이렇게 공부하면서 깨달았던 것들이 삶과도 이어지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삿된 마음 없이 진리를 추구해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나보다 똑똑하고 글 잘 쓰는 학생은 많았겠지만 나와 같은 태도를 갖춘 학생은 드물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힘들어한 끝에 정신과에 가서도 약 처방을 받지 않았을 만큼 나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내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 나빴다. 하지만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옥에 살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생 그 지옥을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지옥 속에 살더라도 지옥을 마음에 품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선택이 쉽다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불가능 또한 아니다. 지옥을 마음에 품게 되면 나의 안과 밖이 같아지고 저항이 없게 된다. 그다음은 다른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들이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 악업을 반복하게 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고리를 끊어버리겠다. 나 또한 언젠가, 또 누군가에게 지옥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에 내가 지옥을 선사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반성하되 앞으로 내 곁에 있을 사람들은 다르게 대할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의지이며 이제는 그 의지를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하지만 왜곡된 환경 속에서 진실을 알기 위해 힘썼고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게 된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를 향했던 그 말들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안과 밖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부딪히겠지만 내가 확고해진 만큼 전보다는 그 왜곡된 환경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같은 지옥을 다르게 살아 보일 것이고 마침내는 그 지옥을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노력해서 혼자 많은 것들을 깨우쳤기 때문에 굳이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한두 번 상담을 받은 뒤로는 병원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예약한 때가 되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병원에 갔다. 그리고 만약 어떤 사정이 생겨서 상담을 중단하게 되더라도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나에게 선택지를 제시했다. 상담을 더 할 것인가, 혹은 쉬어 볼 것인가.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나는 당장 선생님께 털어놓아야 할 만한 일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나에게 일어났던 힘들었던 일들을 전부 다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다 말하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너무 많았고 그것들을 소화하기 위해 하나하나 선생님이 도와주셔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상담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다시 연락해 예약을 잡기로 했고, 처음으로 다음 예약을 잡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 12회, 3개월에 걸친 나의 정신과 상담이 일단락되었다.

 

진작에 정신과에 갔다면 더 빨리 우울과 불안, 끝없는 무기력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차피 약도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힘으로 내가 처한 환경을 바로 보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던져 올바른 답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내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병원에 갔다면 나는 뭐라고 말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고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오래전부터 늘 우울하고 힘들고 죽고 싶었어요." 그랬다면 약을 받았을 수도 있겠고 자살사고가 극심할 때 갔다면 입원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내 문제는 내가 스스로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치료를 시작했든 종료 시점은 비슷했을 것 같다.

올해 여름, 하나의 조각이 맞춰진 것을 시작으로 아주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얻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새로운 대상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었던 대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된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무엇이 보일까? 나는 부감(俯瞰)하게 될 뿐, 보는 대상 자체는 산에 오르기 전에 본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3개월간 내가 한 일은 맞는 길을 찾아 산을 하나 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산꼭대기가 나의 목표지점은 아니다.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시점으로 길을 찾아보려 한다. 혹시 틀린 길을 고르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 때를 위해서 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준비해 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