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하여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등장하는 패트로누스 주문은 행복하고 강렬한 기억을 힘으로 삼아 나를 지켜줄 존재를 불러오는 주문이다. 나는 그런 존재를 부를 수 있을까? 루핀 교수가 해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더욱 강렬한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말할 때 나는 언제를 떠올려야 할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던져보았지만 답이 나왔던 적은 없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없다. 정말 좋았다고 회상할만한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가장 크게 다가왔을 때는 무계획을 계획 삼아 방바닥과 혼연일체 되어 시간을 보내던 그때였다. 행복했던 기억도 돌아가고 싶은 추억도 알 수가 없다니, 그럼 나는 언제부터 우울했었던 걸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가도 시작점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거슬러 올라간 시간만큼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불현듯,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특별히 행복했던 기억도 없다면 나의 인생은 과거보다 현재가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날 이후로 이를 신조삼아 살았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지금이고 내가 행복할 수 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그렇다고 매일같이 행복감에 빠져 살지는 않았는데, 살다보면 언젠가 빈말로도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왔지만 그렇다고 온통 절망으로 점철된 날들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의 깨달음은 잊어버릴 수는 있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니까. 언젠가는 다시 회복되고, 나는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러나 회복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동안 나는 깨달음을 의심하게 되었다. 내가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속였던 것은 아닐까.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할 힘을 잃어버렸을까. 행복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은 구분했지만(돌이켜보면 제대로 구분한 게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꿀 수 없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괴로워해야만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재분류하고, 그러기 위해 중심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 했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또 어디에 매진할 것인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내가 깨달았던 것이 옳았음을 재확인했다.
행복은 앎이다. 내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만이 행복의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기분이 좋기만 하다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행복감과 행복은 다른 것이다. 나는 내가 흐트러지고 무너지더라도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앎에는 연습이 필요하기에 나는 이를 몸으로 체득하고자 운동과 명상을 한다. 자세를 고쳐 앉고 숨을 고르면서 흐트러졌던 것을 바로잡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연습을 한다. 정신과 상담을 3개월 만에 종료했다고 해서 그 이후로 힘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중에도 어떤 터널은 고작 도넛 구멍에 불과했고 어떤 터널은 강원도 산맥 아래를 지나는 것 같았지만 모든 터널은 입구와 출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패트로누스로 돌아가 보자.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내 삶에선 행복했던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분명 있었는데 그 기억을 붙잡지 못해 잃어버렸거나 어딘가 파묻혀 찾을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그렇게 나를 지켜줄 수 있고 나를 안정되게 만들어주는 닻과 같은 기억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현재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배의 목적은 안전하게 정박하는 것이 아니라 닻을 올리고 출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는 항구에 있기보다는 망망대해를 헤매는 날이 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없는 닻을 찾으며 울기보다는 매일 갑판을 청소하고 돛을 수선하겠다. 시간이 남으면 선수를 장식할 멋진 조각상 하나 만들어 보겠다. 혹시 모르지, 선실 깊은 곳에 내가 찾던 닻이 있을 수도 있고 어디선가 닻으로 쓸만한 큰 바위를 찾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것대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내가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내 배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상태로 표류하는 중이다. 어딘가 물이 차오르는 것도 같고 방향감각도 확실치 않다. 분명 수면 아래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서 안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운동과 수면위생 관리 같은 기본적인 생활수칙조차 지키기가 힘들고 몸은 여기저기 아프다. 어쩌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앎을 놓지는 않았다. 정좌하지 못하면 누워서라도 명상을 하고 방청소를 못하면 머리카락이라도 줍는다. 지금 이 상태가 영원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구멍 난 배도 의외로 쉽게 침몰하지는 않고 그 또한 풍랑이 잦아들고 수리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