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밀푀유와 천 개의 말들

밑빠진독Hole in a Jar 2022. 1. 28. 13:29

먼저 밀가루를 체에 쳐서 준비한다. 그리고 물과 녹인 버터를 넣고 반죽한다. 한 덩어리가 되면 잠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꺼낸다. 이제 숙성된 반죽 안에 차가운 버터를 넣고 잘 감싸준다. 밀대로 반죽을 길고 얇게 밀어주고 접어서 다시 밀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또 반죽을 숙성시키고 다시 밀대로 밀고 접어준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반죽이 과하게 부풀지 않도록 포크로 구멍을 내 주면 오븐에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뜨거운 열기에 반죽이 부풀고 군데군데 작게 자리했던 버터가 녹아 나와 공기로 채워지면서 반죽의 켜가 살아난다. 파사삭! 소리를 내는 밀푀유 완성.

 

밀가루가 생각과 감정이라면 버터는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이다. 밀가루를 체에 치는 것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런히 고르는 과정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반죽 사이사이 버터가 자리하도록 밀고 접기를 반복하는 것은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또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반죽이 오븐과 같은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천 개의 말들이 한 겹 한 겹 살아있는 밀푀유가 된다.

 

꼭 그렇게 고심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는 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하던가. 그런데 찰떡같이 알아 들어주는 사람이 보물 같은 존재인 것이지 개떡은 개떡이고, 보물 같은 사람도 늘 개떡만 먹을 수는 없다.  반죽을 접어 밀 시간이 부족할 때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내가 만들 수 있는 빵의 가짓수가 많으면 다 써먹을 때가 온다.

 

버터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표적인 것은 어휘다. 나의 복잡다단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을 많이 알아두면 더 풍부하고 세심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씨실과 날실의 가닥 수까지 정확하게 들어맞도록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는 어느 조각보 장인의 작품처럼. 그런 어휘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평소에 인풋을 해 놓는 것이 좋은데 독서를 하거나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혼자 머릿속으로만 굴리던 생각들을 사람들과 함께 말로 풀어보거나 이미 남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글로 남겨놓은 것을 읽다 보면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고 적재적소에 단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똑같은 양의 밀가루와 버터를 가지고 더 쉽고 빠르게 요리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지만 밀푀유를 먹어보면 밀대로 반죽을 미느라 팔뚝에 알이 배겨도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당연히 첫 시도에 완벽한 밀푀유를 만들 수는 없다 해도 익숙해지면 오븐에 반죽을 집어넣고 구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여유롭게 밀푀유에 올려 먹을 크림을 휘젓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과 감정을 자각하고 이에 섬세한 형태를 부여하면 다루기가 더 쉬워진다. 형언하지 못하는 것과 형언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싹 마른 빵을 먹는 것과 밀푀유처럼 버터 가득하고 질감이 가벼운 빵을 먹는 것의 차이 정도 될까?

 

최근에 어떤 책에서 PTSD를 겪는 사람들의 뇌 스캔 사진에서 브로카 영역의 활성이 감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로카 영역은 언어를 담당하는 부위 중 하나인데 뇌졸중 환자들도 브로카 영역에 문제가 생겨 언어활동에 지장을 겪는 경우가 많다. 브로카 영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외상을 겪을 당시에 입이 얼어붙거나 이후에도 당시 사건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설명이 된다. 어쩌면 어떤 오븐은 외상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외상을 겪었거나 또는 겪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다. 반죽을 먹을 수 있게 만들려면 뜨거운 오븐에서 구워야 하지만 그게 반죽 입장에서는 큰 시련일 거다. 하지만 반죽은 때가 되면 오븐 밖으로 나올 것이고 한 김 식히고 나면 천 개의 잎사귀가 속살거리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반죽은 미리 저어뒀던 크림을 만날 수 있다.

 

제과 취미가 있는 사람들은 알 텐데 과자를 굽다 보면 혼자 다 먹을 수 없는 양이 나오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과자를 나눠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생각과 감정을 서로 주고받으며 사는 것처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잘 먹었다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답례를 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과자 맛에 대한 소감을 넘어선 꼬투리를 잡는가 하면 과자를 맡겨놓은 것처럼 굴며 주문을 넣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과자를 굽는 것은 누구에게 과자를 줄 것인지, 또 누구에게는 주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까지 포함된 일이다. 안타깝게도 열심히 구운 밀푀유를 모두와 함께 나눠 먹을 수는 없다.

 

다들 누네띠네의 윗부분만 살짝 갈라내서 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밀푀유도 그렇게 결마다 분해해서 먹을 수 있을 텐데 심심할 때는 그것도 꽤 재밌다. 나라면 한입에 베어 물겠지만. 밀푀유를 먹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부스러기가 떨어지는데 그 정도는 괜찮다. 청소하면 된다. 그 청소가 싫어서 밀푀유를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