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리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로샤가 화면에 나오는 시간은 처음 몇 분으로 끝난다. 이후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알로샤의 부모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알로샤라고 생각한다. 때로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그 존재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는데 알로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를 간과한 채 섣불리 말하고 섣불리 판단한다. 이혼을 앞둔 제냐와 보리스는 각자 외도 상대가 있고 부동산에 집도 내놓았을 정도로 이혼 조정이 진행되었지만 알로샤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앞으로의 의향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서로 알로샤의 양육 문제를 떠넘기거나 기숙학교 같은 곳으로 보내버리겠다는 말만 늘어놓으며 일부러 상처를 주고 받았다. 한밤중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던 알로샤는 앞으로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집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간다고 나선 뒤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세상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면 어디로 가도 상관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알로샤가 학교에 이틀이나 결석하도록 부모가 전혀 모른 채 시일이 지났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데 학교에 잘 다녀왔는지, 방에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밤늦게 들어와서 아이 방에도 가보지 않은 부모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아무도 맡기 싫어했던 아이지만 막상 사라졌을 때 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알로샤에 대해 너무 몰랐던 부모는 아이가 어디로 갔을지 짐작 가는 곳도 없었고 끝끝내 알로샤는 찾을 수 없었다. 알로샤의 친구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이웃과 왕래도 없었기 때문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제냐는 아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노라고 울부짖지만 알로샤에게는 한 번도 닿은 적 없었던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제냐와 보리스의 마음 속에 알로샤의 자리는 희미했는데 막상 알로샤가 없어진 다음에야 빈 자리를 통해 알로샤의 존재를 느낀다. 이를 계기로 제냐와 보리스는 그들 자신의 결핍을 돌아보게 된다. 원치 않는 임신을 계기로 엄마로부터 도피하듯 결혼한 제냐는 새로운 가정에서도 사랑을 찾을 수 없었다. 제냐의 결핍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도 그 결핍은 제냐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보리스는 사회적으로 내세울 가족이라는 형태가 필요했을 뿐이고, 제냐를 만났을 때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외도로 만난 어린 여자는 임신을 했지만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후일 태어난 아이에게도 그다지 살가운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각자로부터 도망쳐 만든 새로운 가족 속에서도 그들은 공허함을 어찌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알로샤의 결핍은 제목 그대로, 사랑이다. 알로샤는 제대로 사랑받은 적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잃은 것도 없다. 방안에 그렇게 장난감이 많고 벽마다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제냐와 보리스는 알로샤의 취미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처럼 그 집안에 자기 자리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알로샤가 사라지지 않고 둘 중 누군가를 따라 갔든 시설에 맡겨졌든 아이의 자리는 늘 그렇게 모호했을 것이다. 오히려 떠난 다음에야 알로샤의 자리가 확실히 보이게 되는데 문제는 그곳에 남아 부재를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