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별로 없습니다.
영화관에서는 언제나 맨 뒷자리, 가능하면 통로 쪽을 고른다. 그리고 입장시간이 되면 일찌감치 들어가 자리에 앉아서 하나둘씩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뒤에 있다. 나는 영사실의 작은 창으로부터 쏘아져 나오는 빛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창 가까이에서는 부유하는 먼지에 강한 빛이 부딪히면서 한 톨 한 톨이 눈에 명확히 보인다. 어디에나 먼지는 떠다니고 있겠으나 우리는 평소엔 그 존재를 잘 인식하지도 못하고 인식한다 해도 지저분한 것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사실의 작은 창 앞에서만은 먼지도 색색깔 빛을 받아 춤을 춘다. 그렇게 먼지들은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 빛을 온몸으로 가리고 있지만 정작 빛이 스크린에 닿으면 먼지의 존재감 따위는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맨 뒷좌석과 영사실의 벽 사이, 먼지가 가장 아름답게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은 딱 그 정도다. 나에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런 것들까지 모두 포함한 경험이다. 때문에 굳이 상영관이 클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조금 작은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작은 영화관이 좋다고 말하게 된 건 어쩌면 합리화일 수도 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려면 집 근처에서 해결을 못하고 꼭 독립극장을 찾아가야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게 작은 상영관을 찾아다니다 보니 적응도 하고 나름의 매력도 찾은 것이다. 하여간 독립극장이든 멀티플렉스든 영화가 시작되면 휴대폰을 보던 사람도 영사실을 보던 나도 모두 앞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관 내에서 소란을 떨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휴대폰을 끄고 가능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몇몇 소규모 영화관 중에는 음료를 제외하고는 팝콘을 비롯한 모든 간식거리조차 반입할 수 없는 곳도 있는데 영화관 간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쉬울 수 있겠으나 영화 자체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참 고마운 처사다. 이건 각 공간의 성격에 따라 합의된 사항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영화관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는 할 수 없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 간의 합의이다.
<시네마 천국>에서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토토와 알프레도의 이야기보다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은 소란을 떨며 휘파람을 불어 제치고, 어른들 역시 환호하고 떠든다. 경비원이나 간식을 파는 사람도 관객들과 함께 어울려 영화에 빠져드는데 아무도 이에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딱 한 명 있기는 한데 후일 다수의 합의에 의해 응징을 당한다). 이들 사이에는 이렇게 영화를 봐도 된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와 사람들이 있다면 극장 너머 어디든 영화관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 밤늦게까지 기다렸지만 극장은 문을 닫았을 때, 알프레도는 영사기를 창 밖으로 돌려 스크린을 대신하여 남의 집 벽을 비춘다. 어두운 밤, 영화가 보이고 사람들이 그 앞에 모이자 광장은 극장이 되었다. 한밤의 소란에 문을 연 집주인은 사람들의 성화에 오늘만큼은 벽을 내어주었다. 한편 정작 어려서부터 영사기사로 일생을 보낸 알프레도는 영화 대사를 꿸 정도가 되고는 스크린에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작은 영사실 안에서 빛의 마술사는 영화보다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영화에는 소리가 없었고 영사기를 손으로 돌려야 했던 알프레도는 이 일이 너무나 외롭고 고되다고 말했지만 영화를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토토 역시 영사실을 물려받고서는 때로 강변에 스크린을 설치해 야외상영을 했다. 좌석 표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스크린 옆으로 흐르는 강에 작은 보트를 띄우고 그 위에 서서 영화를 봤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익숙해지면 할 만해. 사람들 보는 재미지. 극장에 사람이 가득차고… 웃는 소리가 들리면… 그럼 나도 행복해.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뿌듯해지지. 영화 보면서 사람들이 웃잖아. 세상살이 힘든 걸 잊게 해준 거잖아."
그런데 요즘은 영화관에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던 상영관들이 걸핏하면 문을 닫고, 멀티플렉스 역시 적극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개봉하기보다는 재개봉작을 늘리게 된 지 1년이 지났다. 영화는 집에서도 보긴 하지만 작은 노트북으로 혼자 보는 건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다른 매체라고 해야 할 정도다. 가더라도 옛날처럼 상영관 안에서 간식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옆자리는 비어있다. 사람들이 함께 있기 어려워지면서 공간도 영화도 사라져 가는 지금, 영사실에서 뻗어 나와 부유하는 먼지를 비추고 사람들의 머리 위를 지나 스크린에 도달할 빛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