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37) 썸네일형 리스트형 자기충족적 예언과 탱자나무 “그럴 줄 알았어.” 예언은 생각보다 잘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처음에 생각한 대로 보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까지 하면 꼼짝 없이 그 예언에 갇히게 된다. 그러니 그럴 줄 알았다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행동하게 된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다. 그래서 꿈을 잘 꿔야 한다. 오래도록 꿈을 꾸면 그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의 오랜 꿈은 위리안치였다. 유배 중에서도 극형으로 울타리에 탱자나무를 두르고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살아가는 것. 내 주변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차라리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왜 몰랐을까, 그건 아이언메이든을 조금 더 키운 것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이언메이든은 고문기구다... 도와주세요 처음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생각했었다. 자정이 지났구나.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는 자정이지만 가장 추운 것은 자정을 지난 시각이며, 해가 뜨면서 기온이 다시 올라가게 된다. 상담을 종료한 후 어느 겨울에 계절성 우울을 심각하게 겪은 적이 있었다. 몸을 감싸는 한기가 너무 힘들고 해가 짧고 밤은 길어 수심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러면서도 그걸 해 뜨기 전 새벽의 추위라고 여기며 견뎠다. 그리고 지금은 길었던 밤을 지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꽤 많이 멀어진 상태다. 그러면서 과거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스스.. 러브리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로샤가 화면에 나오는 시간은 처음 몇 분으로 끝난다. 이후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알로샤의 부모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알로샤라고 생각한다. 때로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그 존재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는데 알로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를 간과한 채 섣불리 말하고 섣불리 판단한다. 이혼을 앞둔 제냐와 보리스는 각자 외도 상대가 있고 부동산에 집도 내놓았을 정도로 이혼 조정이 진행되었지만 알로샤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앞으로의 의향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서로 알로샤의 양육 문제를 떠넘기거나 기숙학교 같은 곳으로 보내버리겠다는 말만 늘어놓으며 일부러 상처를 주고 .. 아멜리에: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를 보면 행복해진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은연중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금붕어의 자살기도였다. 어린 아멜리네 집에서 키우던 금붕어 '뻐끔이'는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죽고 싶은 인간이 물속으로 뛰어든다면 뻐끔이는 어항 밖으로 펄쩍 뛰어올라 공기 중으로 몸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져 펄떡대던 뻐끔이는 간신히 구조(?)되어 다시 어항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너무 예민한 성격인 엄마는 자살 기도했던 금붕어와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어 집 근처 냇가에 뻐끔이를 풀어주게 된다. 집에서 쓰던 어항도 함께. 마침 냇가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빗방울이 수면 위로 동심원을 그렸다. 뻐끔이도 그 물결이 일렁이.. 공황장애를 다루며 사는 중 공황장애로 내원한 지 몇 달이 지났다. 나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비상약만 갖고도 충분히 살 만 하다. 처음 약을 처방받은 달은 다섯 번을 먹었지만 최근에는 한 달에 세 번 정도밖에 먹지 않았다. 여전히 카페인을 절제하고 있지만 가끔 디카페인 커피 한 잔 정도는 마신다. 그보다 많은 양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어김없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마지막 진료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당위성'이었다. 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나 종교인에게서 보이는 특징이라고 했는데,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 보니 세상의 흠결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끼는 것이다. 그 말은 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당위는 너무나 옳고 윤리적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포레스트 검프: 초콜릿 편식하기 인생이란 하나의 초콜릿 박스 같단다. 뭐가 걸릴지 아무도 모르거든. 정말 그럴까? 어떤 초콜릿 상자는 크리스마스 어드밴트 캘린더처럼 뭐가 나올지 모르게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초콜릿 상자는 열자마자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원하는 상자를 골라 가질 수 있을까? 또 나에게 주어진 초콜릿은 모두 다 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내 상자에는 다크 초콜릿은 별로 없고 밀크 초콜릿이 대부분이라면 초콜릿의 색깔을 보고 진한 다크 초콜릿만 골라 먹고 밀크 초콜릿은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까진 취향 문제지만 안전, 심하게는 생사의 문제가 되는 것도 있다. 만약 내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데 아몬드 초콜릿이나 마카다미아 초콜릿이 주어진다면? 동그랗고 맨질맨질한.. 공황장애 상담 두 번째 다음 진료일을 기다리는 한 달 동안 비상약을 몇 차례 먹었다. 처음 먹었던 날 저녁, 문득 내가 숨을 멈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호흡을 하고 스트레칭도 해봤지만 긴장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아서 약을 먹었다. 무슨 변화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잠이 들었지만 평소와 달리 새벽에 땀에 젖어 깨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만에 정신과에 가서 지병에 관한 조언부터 전달했는데, 특별히 먹어서는 안 되는 약물은 없으나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내원하여 원인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에서는 약물을 처방하지 않았다. 약물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항우울제를 먹게 되는데, 이 약은 치료시기를 아주 길게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발작이 자주 있지 않고 내.. 세 번째 발작, 상담 재개 최근에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면서 한동안 없었던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들숨 날숨을 수동으로 하고 있었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고 답답해져서 심호흡을 해봐도 쉽게 가라앉지 않아 책을 내려놓고 쉬어야 했다. 여전히 종종 명상을 하며 커피는 점점 줄여가서 최근엔 거의 마시지 않았으니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세 번째 발작이 찾아오면 무조건 병원으로 가기로 했으니 이제는 미룰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께 그간의 이야기를 말씀드렸고 나는 공황장애가 맞았다. 카페에서 머그컵에 따뜻한 커피를 받아서 자리로 가져가면서 온 신경을 집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심스레 걷는다고 해도 발걸음 따라 휘핑크림이 춤을 추기도 하고 끝내는 커피를 흘리기도 한다. 그처럼 나는 .. 밀푀유와 천 개의 말들 먼저 밀가루를 체에 쳐서 준비한다. 그리고 물과 녹인 버터를 넣고 반죽한다. 한 덩어리가 되면 잠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꺼낸다. 이제 숙성된 반죽 안에 차가운 버터를 넣고 잘 감싸준다. 밀대로 반죽을 길고 얇게 밀어주고 접어서 다시 밀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또 반죽을 숙성시키고 다시 밀대로 밀고 접어준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반죽이 과하게 부풀지 않도록 포크로 구멍을 내 주면 오븐에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뜨거운 열기에 반죽이 부풀고 군데군데 작게 자리했던 버터가 녹아 나와 공기로 채워지면서 반죽의 켜가 살아난다. 파사삭! 소리를 내는 밀푀유 완성. 밀가루가 생각과 감정이라면 버터는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이다. 밀가루를 체에 치는 것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런히 고르는 과정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황장애를 의심하고 있다 요즘 공황장애를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은 없는 상태이다.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혼자 극복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래에 편의상 공황장애, 공황발작이라고 쓰는 사건들은 모두 나의 추측에 불과하며 전문의의 진단이 아님을 밝힌다. 첫 번째 공황발작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출근은 했지만 별다른 일도 없고 사람도 없이 혼자 있었던 날 오후였다. 그런 날에도 나는 사무실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그게 가능할 만큼 보통은 하루 종일 마스크를 써도 잘 버티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은 유달리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리 심호흡을 해봐도 나아지질 않았다. 견디다 못해 사람이 오지 ..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