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진료일을 기다리는 한 달 동안 비상약을 몇 차례 먹었다. 처음 먹었던 날 저녁, 문득 내가 숨을 멈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호흡을 하고 스트레칭도 해봤지만 긴장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아서 약을 먹었다. 무슨 변화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잠이 들었지만 평소와 달리 새벽에 땀에 젖어 깨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만에 정신과에 가서 지병에 관한 조언부터 전달했는데, 특별히 먹어서는 안 되는 약물은 없으나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내원하여 원인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에서는 약물을 처방하지 않았다. 약물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항우울제를 먹게 되는데, 이 약은 치료시기를 아주 길게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발작이 자주 있지 않고 내 상태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비상약만으로 다스려보기로 했다. 지병에 대한 부담이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섣불리 시작하기는 쉽지 않고, 비상약으로 처방한 항불안제는 내과에서도 종종 처방하는 약이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가 공황장애를 겪는 이유는 예민하고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환경이 민감한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맞지만 나의 반응 역시 과하고 그 상황에 대해서도 너무 많이 생각하려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했어야 했던 걸까? 그렇게 질문하고 문제를 파악해 전체적인 조망을 그려보고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동안 나는 이미 끝난 상황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나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왜?'라는 질문이 통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것,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며 피하지 못했다면 넘겨야 한다. 깨진 독 밑바닥으로 새어나간 물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새로운 생활 태도는 '왜?'가 아닌 '뭐?'이다. 나는 지나치게 사려 깊고 세심하다. 많이 생각하면서 얻은 윤리의식은 당위성이 되었으나 그건 세상의 평균과는 맞지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마땅히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던가? 그러다 보니 나는 본의 아니게 부조리한 세상에 살게 되었고 그런 세상에서 내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긴장된 분위기가 온몸으로 느껴지고 내가 도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면 이 또한 이타심보다는 불편한 나의 마음을 해소하고 싶은 이기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나의 손길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애초에 그 손이 꼭 내 손이어야 하는 이유도 없었던 거다. 나는 적당히 무심해지고 흘러간 일에 대해서는 셔터를 내려버리기로 했다. 뭐, 날 더러 어쩌라고?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이지 나 자체는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언제부턴가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작년 이맘때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게 됐는데, 그러면 대체로 현재의 내가 과거에 비해서는 더 나은 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현재 나의 위치가 뒤쳐져 있을지라도 나의 주행거리 자체는 상당한 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번에도 약 처방을 받지 않았으니 급할 때 먹을 항불안제를 제외하면 또 나에게 남겨진 것은 내 노력밖에 없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기대하는 만큼 윤리적이지도 않고 이해 가능한 영역도 굉장히 좁다. 그런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세상에 놓인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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