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황장애를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은 없는 상태이다.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혼자 극복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래에 편의상 공황장애, 공황발작이라고 쓰는 사건들은 모두 나의 추측에 불과하며 전문의의 진단이 아님을 밝힌다.
첫 번째 공황발작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출근은 했지만 별다른 일도 없고 사람도 없이 혼자 있었던 날 오후였다. 그런 날에도 나는 사무실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그게 가능할 만큼 보통은 하루 종일 마스크를 써도 잘 버티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은 유달리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리 심호흡을 해봐도 나아지질 않았다. 견디다 못해 사람이 오지 않을 만한 곳으로 가서 마스크를 벗고 휴식을 취해봐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때는 '공황장애 있는 사람들이 발작이 찾아오면 이런 느낌일까?'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보통 공황발작은 약 30분 내로 가라앉는다고 하던데 나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죽을 것처럼 공포감이 엄습하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내 증세가 공황발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유독 커피를 많이 마신 날이었으니까 카페인에 의한 항진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두 번째 발작이 찾아왔다. 그날은 건강검진을 위해 금식을 했지만 검진이 끝나자마자 식사를 했고 충분한 수분 섭취도 했기 때문에 금식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12시간가량 금식이 그 정도로 중대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낮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을 먹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울을 통해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입술이 희게 질렸고 팔다리에 힘이 없고 식은땀이 나며 어지럽고 속이 답답했다. 빨리 욕실을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대충 비누거품만 헹궈낸 뒤 앉아서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증세는 곧 가라앉았지만 진이 빠진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때부터는 공황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침 건강검진을 했으니 결과를 기다려봤다. 그 결과에 이상이 없는데 세 번째 발작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정신과로 달려가야 했다.
그동안 나에게는 예기불안이 생겼다.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다시 병원을 다녀야 하는 걸까, 이번엔 약물처방을 받게 될까, 등등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갔다. 그러던 중에 반대로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욕실에서 발작을 겪었으니 나는 욕실을 두려워하고 기피해야 할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왠지 세 번째 발작이 있을 것 같지 않으며, 일어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이 변해갈 무렵,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수개월 중에 확실히 날짜와 상황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발작이 아니더라도 숨이 얕다고 느끼는 날은 종종 있었다. 명상하며 심호흡을 해보기도 했고 스트레칭도 해봤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최근에 갑자기 발작을 경험한 건 아니었던 거다. 특히 여름부터는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힘들고 꾸준히 하던 운동을 하는 건 더 고되다고 느끼는 날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고민 끝에 찾아낸 이유는 나에게 새로운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정신과 진료를 받던 시기에는 당장 살아있는 게 급했고 먹고 자는 것부터 새로 연습했다면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데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이 잘 되지 않아서 오히려 잘하던 것마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뒤에도 한참 동안 새로운 과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몰랐는데 최근에는 공황으로 추정되는 이 증세를 뛰어넘는 것을 새 과제로 삼기로 했다.
확신은 없지만 일단 커피부터 줄였다. 예전의 나라면 모든 종류의 카페인을 완벽하게 끊어내려고 했겠지만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것이 더 컸던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끊는 게 답은 아닌 것 같다. 보통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디카페인 커피를 고르는데, 내가 카페인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누군가 나에게 카페인 가득한 커피를 사다 주는 날에는 그냥 감사히 마신다. 내가 다른 날 더 조심하고 노력하면 되니까. 또 초콜릿 등에 든 카페인까지 의식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내가 초콜릿을 달고 사는 사람이면 모를까, 어쩌다 한 번 먹게 되는 간식거리까지 통제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명상을 더 자주 하려고 하고 있다. 주로 잠들기 전에 누워서 하는 편인데 어떤 날은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도 내 옷이 무겁게 느껴질 만큼 답답하기도 하다. 호흡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깨달은 것은 들숨에 비해 날숨이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들이마신 공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내뱉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 의식하면 자연스럽게 날숨이 길어지는데 이렇게 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명상을 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는 상태를 알아차리고 과도한 부분은 덜어낸다. 내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느껴지는 것, 누워 있는 지금, 내 몸의 위치 등에만 집중하면 실체 없는 불안은 힘을 잃는다.
어쩌면 이런 것들을 느끼고 의식하게 된 것은 적신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을 긴장 속에 살아왔고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에 시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충분히 안심하고 이완한 적이 거의 없는데 공황장애가 생긴다고 해서 이상할 게 있을까? 나에게 공황장애는 얼마든지 생길 법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렇게나 불안해하는 나를 돌아보고 제대로 의식할 만큼의 여유조차도 없었던 과거가 더 문제였던 게 아닐까. 반면 지금은 수면 아래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일 뿐이다. 내가 겪는 일들이 공황장애가 맞다면 이건 신체의 경보 체계가 아예 작동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원활하지는 않아서 오작동이 많은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 번째 발작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현재 내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작년에 3개월 만에 상담을 종료하게 된 이유도 나에게 더 이상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 노력을 고려한 처사였을 것이다. 그래도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올해가 가기 전에 '정신과 상담일지' 카테고리에 새 글을 올리게 될 수도 있고, 이 글이 그리로 옮겨질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아마 내가 노력하는 부분은 그대로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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