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로 내원한 지 몇 달이 지났다. 나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비상약만 갖고도 충분히 살 만 하다. 처음 약을 처방받은 달은 다섯 번을 먹었지만 최근에는 한 달에 세 번 정도밖에 먹지 않았다. 여전히 카페인을 절제하고 있지만 가끔 디카페인 커피 한 잔 정도는 마신다. 그보다 많은 양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어김없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마지막 진료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당위성'이었다. 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나 종교인에게서 보이는 특징이라고 했는데,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 보니 세상의 흠결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끼는 것이다. 그 말은 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당위는 너무나 옳고 윤리적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상적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게 나쁘다고 하지는 않겠으나 이상은 평균이 아니고,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서 튀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외눈박이 세상의 두눈박이, 아니 세눈박이는 될 것 같았던 나에게 이 '당위성'은 먼저 억울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틀린 게 아닌데, 틀린 게 무엇인지 명확한데 틀린 것을 바꿀 수 없고 정작 바뀌어야 하는 건 나라니. 억울했다. 그러나 그 명확함도 오직 나에게만 명확한 것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엉켜버린 실타래를 마침내 풀지 못한 채 잘라버려야 했다. 잘라내고 새로 매듭지어 실을 이은 자리는 타래를 쓰다듬을 때마다 어색하게 손에 걸렸다. 그 억울함을 충분히 만끽한 자리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남았다.
내가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억울함보다는 의아함 또는 분노가 먼저 고개를 들었겠지만 진료실에서 '당위성'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완전히 놓아버려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온 마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엉킨 타래를 내려놓은 빈손이 허전해 그렇게 외로웠다. 오랜 시간동안 꽉 쥐고 있었던 만큼 자국이 남은 손이 저렸다.
그 이후로는 나에게 관대해졌다. 예전에는 일기마다 '~ 해야지'라는 말이 많았다. 운동 해야지, 밤에 일찍 자야지,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일어나야지, 공부 해야지, 명상 해야지, 식단 조절 해야지, 그런 말들이 가득 차는 만큼 내 건강을 돌보기 위해 하는 것들이 나를 옥죄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러니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언제나 모든 감각이 곤두선 채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예를 들면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몸을 일으키는 게 어려운데 그렇게 누워있는 시간이 하루 중에 그나마 긴장이 풀어져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 시간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억지로 일어났다가도 다시 쓰러지듯 눕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 시간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표면장력까지 채워진 커피와 그 위에 얹은 크림처럼 긴장이 찰랑이다 쏟아질 테니까. 밤에 일찍 잠들지 못하는 것도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최근 큰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까 알아서 수면 시간이 맞춰졌다.
이렇게 모든 생활습관을 옥죄고 뜯어고치는 대신 조금씩 숨길을 내어주면서 호흡이 깊어지고 있다. 겨울 끝자락에 있었던 큰 에피소드 이후로 숨이 얕아지거나 갑자기 심장이 뛰는 날은 있었지만 모두 경미한 정도로 지나갔다. 새벽에 땀에 젖어 깨지도 않는다. 여름이 되고 보니 한겨울에 땀에 젖어 깼던 게 얼마나 이상했는지 알겠다. 약간의 예기불안이 없지는 않지만 증세가 줄어들면서 이마저도 그러려니 싶어졌다. 공황은 최근 1년 사이에 생긴 일이 아니라 근본이 깊은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인지하고 다룰 수 있게 되니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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