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진 않을 거예요.
집에서 영화나 보며 편히 쉬려고 외장하드를 뒤적거릴 때가 있다. 하드에는 봤던 영화도 있고 받아만 놓고 아직 안 본 영화도 많다. 그런데 뭔가… 생각 없이 편하게 볼 만한 영화가 눈에 띄질 않는다. 고르기 귀찮아져서 해리포터를 보는 것도 이젠 질렸다. 이내 외장하드 케이블을 뽑아버리고는 그냥 눕는다. 책도 마찬가지다. 편하게 볼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친구의 말에 내 책장을 둘러보면 똑같이 머리가 아파온다. 비문학이 대부분이며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은 드물고 국내 서적보다는 번역서가 많다. 결국 책 추천을 포기하고 서점에 가서 얇고 껍데기 예쁜 책을 사라고 해버린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띠지에 감겨 있는 작가의 말은 이렇게 머리아픈 취향을 가진 나에겐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평소 문학과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니라서 소설을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서점에서 첫 장을 열어보자 문장이 꼬인 데 없이 편하게 씌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그것도 한국문학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사 왔다. 그리고 역시, 한 번 손에 쥐면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제목만 어디서 주워들었을 때는 학교 보건실에서 벌어지는 아주 현실적이고 심각한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닐까 상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보건교사의 정체는 엑토플라즘이 젤리 같은 형태로 보인다는 일종의 퇴마사였다. 도구는 무지개 색 깔때기 칼과 비비탄 총. 병원 간호사 노릇에 질린 안은영은 고등학교 보건교사로 취직하지만 그곳에서도 계속 이상한 사건들에 휘말린다. 평범하지 않은 보건교사와 이상한 것들이 꼬이는 학교, 하지만 그것도 계속 살다 보면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된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죽고 산 것들의 세계를 오가면서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안은영은 그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지 않는다. '나는 왜 이런 것들이 보이는 걸까?' 이런 고민은 해봤자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무시할 수 있는 성정이라면 무시도 괜찮은 대처법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안은영은 의외로 열정이 넘치는 편이었다. 응급처치 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가까이서 봐야 하기 때문에 강당에서 한 번에 끝내는 대신 더미를 업고 각 교실을 도는 사람이다. 안은영은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명승지나 소원나무를 찾아다니고 보양식을 챙겨 먹으며 좋은 기운을 받고 나쁜 기운을 흩을 수 있는 힘을 키운다. 보건교사와 퇴마사는 아주 상반된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안은영에게는 자신의 손 닿는 곳에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는 점에서 둘 다 본질은 같은 것이다. 그게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보상으로 돌아오는 행위는 아니라는 건 알지만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사립 M고는 사연을 간직한 연못의 안 좋은 기운을 압지석(壓池石)으로 눌러 봉인한 터에 학교를 세워 어린아이들의 기운으로 재차 누른 곳이다. 그 봉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학교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생겼던 모양인데 한문교사 홍인표가 압지석을 건드리면서 봉인이 완전히 풀리자 학교에 이상한 괴생물이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잘 무마되었지만 여전히 이 터의 내력을 소상히 알 수는 없었다. 어차피 봉인은 풀렸고, 나온 것은 퇴치를 했으니 다 끝난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에 홍인표는 압지석이 있었던 건물 지하를 메워버렸고 그 이후로 더 이상 학교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학교를 휘젓고 다니는 안은영에게 협조하며 보조배터리 또는 물주 노릇을 충실히 해내며 살게 되었다.
안은영과 홍인표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런 태도는 엑토플라즘을 보며 살아가는 것, 또는 이상한 터에 세워진 학교의 재단 후계자로 사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어차피 이들이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으며 살 방법은 없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의문은 접어두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헤쳐가는 것이다.
나는 정신과를 다니면서 선생님께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앞으로도 많겠지만 그런 순간이 왔을 때만 잘 다루면 되고 평소에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이 일단락된 지금도 때때로 우울감이 올라올 때가 있지만 선생님의 말을 기억하며 잘 헤쳐나가고 있다. 이전에는 우울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홀로 헤매는 것 같은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의 우울의 근원에 다가간 지금은 허름한 손전등 하나를 들고 있는 기분이다. 한 발짝 앞이라도 비춰가며 발을 딛고 손을 뻗으면서 알게 된 것은 이 공간이 캄캄하고 무한한 우주가 아니라 입구와 출구가 있는 통로였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그 통로를 얼마나 많이 지나와야 할지는 모르지만. 안은영의 무지개 칼과 비비탄 총은 나에겐 허름한 손전등이었다. 그런데 손전등을 조금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으나 최고의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여분의 건전지다. 안은영이 홍인표의 기운을 빌려 무지개 칼을 더 오래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엑스칼리버를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고생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왜 생기지 않겠나. 남들은 모르는 것들을 보고 다룰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퇴마사 노릇을 하고, 사학재단 집안 아들로 태어나서 교사가 된 데다가 기운이 남다르다는 이유로 퇴마사의 보조배터리가 된 것이 때때로 억울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은영과 홍인표는 이에 대한 보상따위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순조롭게 받아들였다. 노력과 보상이 언제나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매켄지는 주어지지 않는 보상을 직접 찾아 나서며 숨길 수 없이 탁해져 간다.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안은영과 송치 가죽 재킷을 입는 매켄지, 두 사람은 같은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안은영과 홍인표가 좋아하는 말, 친절. 친절은 그런 선택이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되었을 때 따라오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런 선택을 일상으로 삼고 살아간다. 때문에 처음엔 우당탕탕 어드벤처가 아닌가 싶었던 이 이야기는 어쩐지 조금 밋밋한 결말로 끝나버렸다. 나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학교이지만 어차피 이곳을 벗어난다고 해서 안은영의 삶이 안온할 수는 없을 것이고 홍인표에게는 학교를 벗어난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그렇다면 늘 하던 것처럼 보상도 없는 노력을 하면서 친절한 사람으로 살아가되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따져 묻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빠르게 읽어 내린 나는 작가의 의도대로 쾌감을 느꼈지만 직접 살아야 하는 입장에선 대단히 재밌진 않을 것이다. 일상은 그런 것이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이드 르윈: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0) | 2021.01.01 |
---|---|
프랭크: 포기할 수 있는 계기 (0) | 2020.12.01 |
문라이트: 파르라니 빛나는 외피 (0) | 2020.11.07 |
존 카메론 미첼의 영화들: 마음의 벽을 뒤로 하고 (0) | 2020.10.24 |
아프면 쉬세요 (0) | 2020.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