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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충족적 예언과 탱자나무 “그럴 줄 알았어.” 예언은 생각보다 잘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처음에 생각한 대로 보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까지 하면 꼼짝 없이 그 예언에 갇히게 된다. 그러니 그럴 줄 알았다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행동하게 된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다. 그래서 꿈을 잘 꿔야 한다. 오래도록 꿈을 꾸면 그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의 오랜 꿈은 위리안치였다. 유배 중에서도 극형으로 울타리에 탱자나무를 두르고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살아가는 것. 내 주변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차라리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왜 몰랐을까, 그건 아이언메이든을 조금 더 키운 것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이언메이든은 고문기구다...
도와주세요 처음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생각했었다. 자정이 지났구나.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는 자정이지만 가장 추운 것은 자정을 지난 시각이며, 해가 뜨면서 기온이 다시 올라가게 된다. 상담을 종료한 후 어느 겨울에 계절성 우울을 심각하게 겪은 적이 있었다. 몸을 감싸는 한기가 너무 힘들고 해가 짧고 밤은 길어 수심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러면서도 그걸 해 뜨기 전 새벽의 추위라고 여기며 견뎠다. 그리고 지금은 길었던 밤을 지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꽤 많이 멀어진 상태다. 그러면서 과거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스스..
러브리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로샤가 화면에 나오는 시간은 처음 몇 분으로 끝난다. 이후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알로샤의 부모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알로샤라고 생각한다. 때로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그 존재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는데 알로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를 간과한 채 섣불리 말하고 섣불리 판단한다. 이혼을 앞둔 제냐와 보리스는 각자 외도 상대가 있고 부동산에 집도 내놓았을 정도로 이혼 조정이 진행되었지만 알로샤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앞으로의 의향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서로 알로샤의 양육 문제를 떠넘기거나 기숙학교 같은 곳으로 보내버리겠다는 말만 늘어놓으며 일부러 상처를 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