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여름휴가 기간이 끝나고 2주 만에 상담을 받았다. 상담예약이 없었던 지난주에 우울한 기분이 올라와서 빨리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터라 상담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첫 진료를 받기 전까지는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상담을 시작한 뒤로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 우울감이 들었던 날, 나는 아침 해가 뜨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보통 이런 때는 몸은 누워있지만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기 때문에 쉬지도 못한다. 물론 요즘 평생에 걸쳐 눌러왔던 기억과 감정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늘 마음이 분주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지난달이 더 심했다. 미열이 나는 것 같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여서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필요하면 낮잠도 잤다. 그런 것도 한 달쯤 지나자 조금씩 줄어들었고 요즘은 감정의 통로에서 일어나는 병목현상도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렇다면 갑자기 우울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겠지, 바로 내 일상생활이었다.
최근 다리가 당기고 아팠다. 아마 무거운 물건을 옮기다가 다쳤거나 스트레칭을 하다가 무리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평소 하던대로 매일 운동을 했다. 내가 이 습관을 만들기 위해 거의 반년을 노력했는데 조금 아프다고 운동을 쉬면 좋은 습관이 다시 무너지고 일상이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리는 '이러다 말지' 않았고 나는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내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운동하는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아픈 다리로 무리를 한다면 이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운동량을 줄이기로 했는데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처음엔 가만히 앉아서 어깨 스트레칭만 가볍게 하는 정도였던 것이 점점 갈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아마 저녁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잠시 명상이라도 하고 잤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았겠지만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를 시작으로 그간 잘 해오던 방청소도 미뤘고 매일 쓰던 일기도 건너뛰었다.
내 생활습관이 흔들린 것이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청소나 운동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생활의 중심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단 아주 천천히 하고 있으며 전처럼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게 되었다. 내 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점검하는 데 집중하며 몸에 무리가 간다 싶으면 멈추고 그 이상 욕심내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방청소를 했고 하던 대로 매일 아침저녁 일기를 썼다. 이렇게 일상을 회복하자 우울감과 무가치감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예전엔 우울하고 힘들어도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책, 자기비하, 심하면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힘들었던 주요 원인을 알고 있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하며 자기관리가 무엇인지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울한 기분이 들어도 오랫동안 잠식되지는 않는다. 예전엔 우울증이 끝을 알 수 없는 늪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그냥 통로 같다. 이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도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저번 상담 때 하던 이야기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것 같아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저번 상담이 끝나고 계속 생각하다가 툭 떠오른 그 말을 선생님 앞에서 입 밖으로 뱉어봤다. "그럼 뭐 어쩌라고?" 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고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에 따라서만 행동하다가 정작 내 기분을 돌보지 못했다. 나도 답답하고 짜증나는데 내 기분은 나조차도 외면했던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내 솔직한 기분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구나, 그래서 사실은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기가 싫구나' 하고 인정했어야 한다.
일단 여기까지는 잘 했는데, 문제는 앞으로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이다. 선생님이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봤는데 사실 나는 답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무슨 말이든 해봤지만 선생님은 내가 너무 앞서 나가고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 같은데, 천천히 속력을 유지하면서 가야 할 것 같다. 선생님은 답을 말해주지도 않고 내가 빨리 달리려고 하면 자꾸 잡아챈다. 내 걸음걸음을 모두 느끼며 주변의 사물을 상세히 둘러보고 감각하며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르지만 저번 상담에 비해서는 미적지근한 기분으로 끝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