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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치료일지

네 번째 진료

이제 어느 정도 내 상황에 대한 파악이 끝났고, 조금씩 깊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선생님이 그에 대한 내 생각, 감정을 끊임없이 물어봤다. 하지만 뭔가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은 채 헤매다가 상담시간이 끝나버렸다. 감정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실제 나의 삶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일까?

 

병원 문을 나서고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봤다. '그럼 뭐 어쩌라고?' 아, 이게 내 감정의 정체였다. 나도 답답하고 짜증 나는데 머리로 생각한 행동을 했다. 이렇게 하는 게 옳은 것이고 상황에 맞는 반응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했지만 사실 내 마음은 그렇게 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오늘 회상해봐도 쉽지 않았던 그 감정과 내가 취한 행동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내가 괴로웠던 것이다.

 

이건 단순히 하나의 사건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우울하고 무력감을 느꼈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책을 읽어보기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깨닫게 된 것도 많지만 나의 이야기들을 너무 논리에 치우쳐서 생각하느라 정작 그때 느낀 내 감정은 어땠는지 돌아보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책을 내려놓고 공부도 하지 않고 쉬엄쉬엄 내 감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병원에 가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도 미리 생각해보곤 했는데 그것 또한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여기에 쓴 내용만 얘기해도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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