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들어가 앉으면 일주일 간의 근황 이야기부터 하게 된다. 요즘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잘 조절하면서 살고 있다. 잠을 설쳐도 새벽에 깨면 깼나 보다, 또 자야지, 아침에 눈이 안 떠지면 그런가 보다, 그럴만하니까 안 떠지겠지 하며 지낸다. 소음 때문에 숙면에 방해가 되는 것 같으면 귀마개를 끼고 자면 된다. 그래서인지 잠이 얕아도, 꿈을 많이 꾸는 날이 있어도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그리고 전부터 공부하려고 했던 게 있는데,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면서 선뜻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많이 하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아예 하지 못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이 훨씬 나으려니 하고 있다.
며칠 전, 집에 혼자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보나마나 경비실에서 택배 찾아가라고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운동 중이었고 방해받기 싫었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 그 택배는 냉장식품도 아니었고 급한 물건도 아니고 부피가 커서 빨리 치워줘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내 운동이 더 중요했다. 정 급한 용무가 있으면 다시 연락하거나 우리 집으로 올라오시려니 했다. 그리고 운동을 마친 다음 경비실로 내려가 내 택배를 찾아왔다. 경비실에서 뭐라 하지도 않았고 내 물건들도 멀쩡한 것을 보니 '인터폰 좀 안받는다고 별일 없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언제나 남의 부름, 요구에 즉각 응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남이 나를 부른다고 해도 나도 내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타인에게 즉각 응답할 수는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에겐 늘 부름에 응답하고 필요를 충족시켜달라고 요구하는 타인들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타인에게 즉각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필요, 나의 요구에는 즉각 응답했었는가? 나는 이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열심히 노력해서 제때 밥 먹는 것이 자동적인 습관이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끼니를 자주 걸렀다. 귀찮아서, 먹기 싫어서, 바빠서 등등 핑계도 참 다양했다. 요리를 하는 것도 '입에 넣자고 그 고생 하기 싫다'고 생각해왔고 아무거나 먹고 대충 때우는 날도 많았고 아예 굶는 날도 많았다. 너무 오랫동안 먹지 않아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조차 나지 않는 상태를 편안하게 느꼈던 날도 종종 있었다. 돈이 부족하든 시간이 부족하든 무언가 여유롭지 않을 때는 언제나 먹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밥조차 먹지 않는 내가 나의 필요,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을 리가 있겠는가. 한편 나에게 방해가 된다 싶은 음식을 끊는 건 참 잘했다. 잠을 잘 못 자면 좋아하던 커피를 비롯해 카페인이 든 음식을 끊었고, 위염이 도지면 밀가루 음식이나 매운 음식을 단칼에 끊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제공하지 않는 건 그렇게 쉽게 하면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제공하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것은 그동안 들어주지 않았던 나의 요구를 듣고 제때 응답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무시해왔던 나 자신에게 다시 관심을 주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주어야 한다. 내가 챙기지 않는다면 누가 그것을 챙겨 주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은 또 "그렇지" 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셨다. 매번 병원에 가서 하는 이야기를 축약하면, 나의 환경이 나를 괴롭게 하는데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그 환경에 처한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환경에서도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더 버텨낼 힘이 날 테니까.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나를 돌보면 언젠가는 이 환경에서도 벗어날 힘이 생길 것이다.
이야기가 흘러흘러 가다보니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게 됐는데, 선생님은 내 근황 이야기 중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고 싶은 게 있다고 하셨다. 바로 '공부해야지'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계속 실천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다음 주에는 이에 대해서 말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그건 다음 진료 때의 일이고, 일단 또 한 주를 열심히 살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