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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감정은 언제나 옳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예민한 것일 수 있다. 혹은 남들이 너무 둔감해서 상대적으로 내가 예민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예민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관건은 예민하게 느낀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이다.

 

"내가 이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게 이상한 걸까?" 화도 내야만 하는 때가 있지만 '이 상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는 화를 내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혹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해도 바람직한 방법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화가 나 있다는 뜻이다. 화가 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화를 표출하는 때와 방법은 고민이 필요하다.

 

때때로 이렇게 자기 감정에 대해 타인의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자신의 감정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쌓지 못한 경우에 그런 확인에 매달리게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내 감정은 타인이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왜냐하면 감정에는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끔찍한 감정일지라도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면 그것은 뭐든지 옳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밖으로 표현하는지, 혹은 안에서 다스리는지에 달렸다. 가령 내가 어떤 사람이 너무 미워서 때리고 싶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실제로 남을 때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래선 안 된다고 배웠고, 더 좋은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 감정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표현방식이야말로 문제이다. 그것은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며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한 화는 나에게 되돌아온다. 부정적인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 둔 감정들도 언젠가는 더 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고, 그때는 손을 쓰려해도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부처님 또한 인생의 괴로움 때문에 숱한 세월을 들여 깨달음을 구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노력은 할 수도 있겠지만 수신(修身)은 개인의 영역에서 행하는 것이지 남이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스님들은 종종 "내 감정을 받아들이세요"라고 말한다. 내가 슬프면 슬픈 것이고 화가 나면 화가 난 것일 뿐, 이에 대한 평가나 판단은 필요없다. 단, 화가 난다고 마구잡이로 소리 지르라고는 안 했다. 받아들이라는 말은 그저 내가 화가 났음을 바로 알고 인정하라는 조언일 뿐이다. 그래야만 그 화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이야기 역시 정신과 선생님께 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내 삶에서 실천은 잘 안 되고 있었다. 내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고 선생님은 내가 자꾸 결론을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내가 성급하게 말을 이어나가면 선생님은 자꾸 붙잡아서 감정을 되짚어보게 만들곤 했다.

 

그때 이후로 계속 내 감정을 파악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휘력이다. 내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줘야 그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 파악하기 연습 중에 가장 금해야 할 말은 "짜증나"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슬픔, 답답함, 서운함, 분노, 불쾌함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를 "짜증나"라는 말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다양한 감정에 적합한 반응이 아닌 매번 똑같은 반응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반응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이해받기 어렵다. 결국 해소되지 않은 채 쌓이는 것이다. 반면 다양한 어휘를 활용하여 감정의 결을 살피려고 애를 쓰면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다룰 수 없지만 형언할 수 있는 감정은 다룰 수 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오늘의 기분을 물어보지만 아직은 어렵고 잘 모르겠다. 그럴 때면 몸상태를 관찰하거나 하루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도 질문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것들이 있다. 감정 파악하기 연습을 통해 나의 감정을 물어봐주고 이에 대해 어떤 평가도 없이 받아들일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펜을 쥔 손이 머뭇대는 것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