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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먹는 것과 나를 돌보는 연습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정신도 건강하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배워서 만들어 먹거나 맛집탐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먹을 때도 대충 먹는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이렇게 말했더니 선생님도 맞는 말이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상담은 종료되었지만 나의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돌보는 연습인데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걸 아주 잘 한다. 반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끼니를 거르는 때가 아주 많아서 건강이 상했고 요리는 싫어했다. 먹는 게 귀찮고 싫은데 그걸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배고픔을 무시하다 못해 몸이 배고프다는 신호조차 보내지 않는 상태를 차라리 편안하다 느낀 적도 많았고 잠을 못 자고 일하는 중에 식사는 거른 채 커피만 마신 적도 많았다. 당장 살아있으려면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데 그게 싫은 사람이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식단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하기는 했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못 자서 카페인을 끊어야겠다 싶으면 커피, 차, 초콜릿 등을 전부 단칼에 끊어냈다. 위장장애로 고생을 하면 밀가루, 매운 음식 등을 먹지 않았다. 문제는 이전에 먹던 것을 안먹게 되었을 때 그 빈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워주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나에게 주지 않는 것은 잘하지만 먹고 싶고 필요한 음식은 주지 않았다. 그렇게 보상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나의 식단관리는 건강에 도움이 됐던 적이 별로 없고 스트레스만 가중되었다. 그러나 자기관리의 의미를 모른 채 채찍만 휘두르던 시절의 나는 그게 문제인 줄도 몰랐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식사를 알약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알약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시도한 적도 있다. 바쁘고 귀찮으니 선식이나 두유 정도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과도하게 많았던 것이다. 그때 잃은 건강을 회복하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와중에 건진 것이라면 먹는 것이 단순히 영양소 섭취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정도다. 음식을 통해 여러가지 감각을 자극하고 저작운동을 거쳐서 섭취하는 것과 음료 또는 약으로 섭취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걸 알게 된 지금의 나는 하루 최소 두 끼를 먹는 습관을 지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벼운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바로 식사를 준비한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은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야지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에 대해 생각이 길어지면 귀찮아지고 결국 식사를 거르게 되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하고 먹고나면 뒷정리를 해야 하는데 정작 먹는 시간보다는 준비와 정리에 들이는 시간이 더 길고 노력도 더 많이 들어간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니 자신에게 먹을 것을 제공할 줄도 모르는 사람은 이 과정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지쳐서 식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서야 이상하게 느껴지는 점은 과정을 생각하는 중에 '맛있겠다' 같은 기대감이 없었고 오로지 숙제같은 느낌 뿐이었던 것 같다.

먹는 것과 그에 필요한 과정을 겪는 연습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요리다. 모든 음식을 밖에서 사먹을 수 없다면 어느 정도는 해야만 하는 것이 요리인데 사실 참 귀찮다. 나는 한 끼 때우면 그만이고 입에 넣자고 그 귀찮은 일을 하기 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더더욱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흥미가 없으니 요리에 공을 들이지 않았고 당연히 결과물도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당연히 먹어야만 하고 먹는 데는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만큼 요리가 싫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것이 스스로를 위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수고가 감수할 만 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먹는 것이 곧 나를 돌보는 연습이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에 좋은 음식만 챙겨먹는 편은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먹고싶은 게 없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평이 많은 것보다 더 나쁜 게 어떤 표현도 없이 뭘 먹어도 상관없고 안먹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딱 그랬다. 사람들과 함께 식사메뉴를 고를 때는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고 불평은 안하지만 맛있다고 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무언가 먹고싶은 것이 생긴다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다만 오늘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다면 내일은 속이 편한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