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하나의 초콜릿 박스 같단다. 뭐가 걸릴지 아무도 모르거든.
정말 그럴까? 어떤 초콜릿 상자는 크리스마스 어드밴트 캘린더처럼 뭐가 나올지 모르게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초콜릿 상자는 열자마자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원하는 상자를 골라 가질 수 있을까? 또 나에게 주어진 초콜릿은 모두 다 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내 상자에는 다크 초콜릿은 별로 없고 밀크 초콜릿이 대부분이라면 초콜릿의 색깔을 보고 진한 다크 초콜릿만 골라 먹고 밀크 초콜릿은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까진 취향 문제지만 안전, 심하게는 생사의 문제가 되는 것도 있다. 만약 내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데 아몬드 초콜릿이나 마카다미아 초콜릿이 주어진다면? 동그랗고 맨질맨질한 초콜릿 코팅에 속아 모르고 입에 넣었다 하더라도 견과류가 나오자마자 뱉어야 한다. 한 번 그런 경험을 했다면 다음에는 적어도 겉이 오돌토돌한 페레로로쉐만큼은 먹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먹다 보면 보기만 해도 알게 되는 것도 생기는 법이다.
우리는 역사의 중요한 사건마다 꼭 몸소 겪게 되는 사람들을 보면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곤 한다. 현대사 연표를 가운데 놓고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을 짚어보면 포레스트는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우연히 굵직한 사건들과 조우하게 된 것 같다. 또 수차례 눈먼 행운이 찾아온 인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포레스트 개인을 중심으로 보면 그건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포레스트가 인생의 모든 것들을 직접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포레스트는 경계선 지능을 갖고 태어났고, 등이 굽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포레스트를 일반학교에 입학시켜 교육을 받게 했고 포레스트의 다리에 교정기를 달아 등을 펴주려 했다. 다행히 등은 펴졌고 나중에는 다리 교정기 없이도 잘 달릴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리 일반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경계선 지능 자체는 어찌할 수 없었다.
어린 포레스트는 다리에 교정기를 달고도 열심히 달렸다. 주로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달아났고 그렇게 달리다 마침내 교정기로부터 달아난 뒤로는 천천히 걸어 다닐 수도 있었지만 항상 달리기를 선택했다. 달리고 또 달렸고, 달리다 보니 풋볼 팀에 스카우트되어 대학 풋볼 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포레스트는 경계선 지능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특기 하나로 대학 졸업장을 받았고 그와 함께 대학 풋볼 선수로서의 인생이 끝나자 더 이상 풋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순진하고 권유를 받으면 쉽게 잘 따라가는 성격인 포레스트에게 군대는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상급자의 명령을 받으면 수행한다, 사병으로 입대한 포레스트에게는 이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포레스트가 자기 생각은 전혀 없고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휘둘리기만 하는 인물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포레스트는 정글에서 교전 중 수세에 몰려 퇴각해야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우들을 하나 둘 구출해 해변으로 옮겼고, 이는 다리를 다친 채 차라리 전사하기를 바라는 댄 중위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포레스트가 상관의 말을 듣지 않은 유일한 날이었고, 이때 입은 부상으로 포레스트는 군 병원으로 이송되고 명예훈장도 받게 되었다. 두 다리를 절단하고 목숨을 구한 댄 중위는 차라리 자신을 그곳에서 죽게 내버려 뒀어야 한다며 괴로워했지만 마침내는 남아있는 자신의 몸과 앞으로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군 병원에서 배운 탁구로도 많은 것을 이뤘지만 군인도 탁구선수도 다 끝난 다음 포레스트는 과거의 직업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나, 군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준 버바와의 약속만은 놓지 않았다. 포레스트는 버바의 고향으로 가서 새우잡이 사업을 한다는 약속을 지켰고 그마저도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고 고향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나간 일에 매이지는 않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은 우직하게 붙잡았다. 새우잡이 사업이 잘 된 것이 우연히 날아든 행운처럼 보일지 몰라도 매일같이 어선을 바다에 띄운 것은 포레스트였다.
두 다리로 달리는 포레스트와는 달리 새가 되어 날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아이가 있었다. 포레스트가 교정기를 달고 있던 때에도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 주었던 제니다. 제니는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다가 아버지로부터 벗어난 뒤로는 할머니와 함께 트레일러에서 살게 되었다. 여대에 들어간 제니는 학교 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고 <플레이보이>지에 실릴 사진을 찍어 퇴학당하는가 하면 자신을 때리고 함부로 대하는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 제니에게 포레스트는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지만 제니는 포레스트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렇게 제 발로 서지 못한 제니는 부유하듯이 히피가 되어 떠돈다. 포레스트는 언제나 기회가 되면 제니를 붙잡으려 했지만 제니에게는 포레스트를 마주 잡을 힘이 없었다.
제니에게 벌어진 많은 일들은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떠안은 형편없는 초콜릿 상자 때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제니의 상자 안에도 개중 나은 것은 있었다. 이를테면 포레스트는 남자친구로서는 힘든 부분이 많지만 최소한 제니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었고 이왕 들어간 대학은 어떻게든 졸업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이마저도 쉬운 선택은 절대 아니지만. 먹어 본 초콜릿이 그것뿐이라 익숙한 것에만 손을 뻗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미한 알레르기는 적당히 참고 넘기거나 약으로 증상을 조절할 수도 있지만 심하면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익숙한 초콜릿이라도 내던져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빨리. 제니가 마침내 그 선택을 하게 됐을 때는 너무 먼 길을 돌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많았다.
"넌 네 운명을 잘 개척했어. 신이 주신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해."
"제 운명은 뭐죠?"
"그건 네가 알아내야 해. 인생이란 하나의 초콜릿 박스 같단다. 뭐가 걸릴지 아무도 모르거든."
개척이라는 게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경험을 하며 살다가 한정된 수명이 다하면 죽는다. 넓은 세상 중 개인이 어디에 떨어질 것인지는 직접 선택할 수 없고 우연히 떨어진 이곳에서 아주 많이 벗어나지도 못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몸에 달린 내 손이다. 상자를 열 것인가, 덮을 것인가. 이 초콜릿을 먹을까? 던져버릴까? 오래 고민하는 동안 초콜릿이 체온에 녹아 손바닥에 진득하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던져도 던져지지 않는 초콜릿은 내 주변에 지문처럼 남게 될 수도 있다. 초콜릿이 주어졌다고 다 먹을 필요는 없지만 상자 한 구석에 두고 무시하든 밖으로 내던지든 선택은 해야 한다. 또 초콜릿이 상자 밖으로 굴러 떨어지려고 할 때 재빨리 낚아채거나 심지어는 떨어진 것도 주워 먹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 늘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평온하게 상자를 여는 것 같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순간순간에 판단을 하고 몸을 움직여 실행하는 것이 운의 비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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