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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아멜리에: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멜리에>를 보면 행복해진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은연중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금붕어의 자살기도였다.

 

 

어린 아멜리네 집에서 키우던 금붕어 '뻐끔이'는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죽고 싶은 인간이 물속으로 뛰어든다면 뻐끔이는 어항 밖으로 펄쩍 뛰어올라 공기 중으로 몸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져 펄떡대던 뻐끔이는 간신히 구조(?)되어 다시 어항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너무 예민한 성격인 엄마는 자살 기도했던 금붕어와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어 집 근처 냇가에 뻐끔이를 풀어주게 된다. 집에서 쓰던 어항도 함께. 마침 냇가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빗방울이 수면 위로 동심원을 그렸다. 뻐끔이도 그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곳에는 다른 물고기나 수초들도 있을 것이고 또 이전에 집에서는 자신을 가두던 감옥 같았던 어항이 냇가에서는 일종의 은신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먹이를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삶일 것이다.

 

 

뻐끔이가 냇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처럼 한 번의 죽음과 같은 단절 이후 새로운 것들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아멜리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아빠의 관심이 좋아서 두근대던 아이의 마음을 심장병으로 오인할 만큼 무심한 아빠 탓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엄마와 홈스쿨링을 하던 아멜리의 유년기는 어항 속 뻐끔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와의 홈스쿨링도 그렇게 오래 할 수는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교회에서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나오는 길에 투신하는 사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바라던 새 생명 대신 죽음을 받은 것이다. 그날 이후 아빠는 마당에 엄마의 납골당을 꾸미는 일에만 매달린 채 고립된 생활을 했으니 어린 아멜리의 인생이 얼마나 좁았을지 짐작이 간다. 엄마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곳에서 아멜리는 벗어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성인이 되고 취직을 해서 집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아멜리에게도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아멜리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된 계기는 다이애나비의 죽음이다. 뉴스를 틀어놓고 욕실에 있던 아멜리는 속보를 듣고 놀라 로션 뚜껑을 떨어뜨린다. 뚜껑이 굴러가 욕실 타일 한 장이 떨어지고, 그 안에는 이전 세입자가 남긴 추억상자가 있었다. 아멜리는 이 상자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상자의 주인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였는데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다시 만나고는 눈물을 글썽인다. 이 사건을 겪은 아멜리 또한 자신의 삶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아멜리의 마음에 흘러넘치던 인류애는 길거리의 맹인과 노숙자에게도 닿았지만 아빠에게는 닿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아멜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아빠를 집 밖으로 이끌기 위해 움직인다. 엄마의 납골당에 장식되어 있던 인형을 훔쳐온 다음 세계여행을 보내고 사진을 찍어 무명으로 집에 보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인형은 아빠의 아바타인데, 집에만 있던 아빠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부터 아멜리는 아빠에게 여행을 권했지만 아빠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인형이 세계를 여행하고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을 보자 마음이 동했는지 여행가방을 들고 대문을 나선다.

 

 

아빠의 삶도 뻐끔이와 비슷했다. 집에 갇힌 채 살던 아빠는 뻐끔이보다 용감하지는 않았는데(자살이 용감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이제 변화를 감행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아빠의 세상은 훨씬 넓어지게 될 것이고, 집은 여행에서 돌아와 안식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뻐끔이의 어항이 아멜리네 집에서는 감옥이었지만 냇가에 던져 놓으면 은신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갇혀 있으면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사람은 아멜리의 이웃집 노화가 뿐이다. 뼈가 약해 악수는 꿈도 못 꾸고 가구 모서리마다 헝겊을 덧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이 유리인간은 직접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를 환대하고 용기 없는 아멜리의 등을 떠밀어준다. 때로 아멜리에겐 노화가의 말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혼자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버티기도 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고 문을 박차고 나가자 지금까지의 아멜리의 삶이 무너졌고, 드디어 다른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다.

 

아멜리의 상상력과 관찰력은 한 번의 죽음 이후의 삶을 가능케 한 재능이다. 어린 시절 집에 고립되어 있을 때부터 상상 속의 세계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켰고, 늘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며 관심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고립된 중에도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만은 항상 함께 했다. 비록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새로운 만남에 서툴렀지만 자연스럽게 할 수 없다면 작전을 짜서라도 움직였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 새로운 삶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추진력이 나오는 게 아닐까.

 

죽음과도 같은 경험은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무너뜨린다. 뻐끔이처럼 진짜 죽음을 불사하는 경우도 있고, 아멜리와 아빠처럼 그림자를 드리운 채 고립된 삶을 살다가 과거의 자신을 집에 내버려 두고 문 밖으로 발걸음을 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다 보면 이전의 자신은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되기도 한다. 흐려진 과거의 기억 대신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상상했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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