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어.”
예언은 생각보다 잘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처음에 생각한 대로 보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까지 하면 꼼짝 없이 그 예언에 갇히게 된다. 그러니 그럴 줄 알았다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행동하게 된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다. 그래서 꿈을 잘 꿔야 한다. 오래도록 꿈을 꾸면 그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의 오랜 꿈은 위리안치였다. 유배 중에서도 극형으로 울타리에 탱자나무를 두르고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살아가는 것. 내 주변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차라리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왜 몰랐을까, 그건 아이언메이든을 조금 더 키운 것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이언메이든은 고문기구다. 관 같은 캐비닛 내부에 못이 촘촘히 돋아나 있어 이 안에 갇힌 사람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나는 이 기구에 대해 자주 상상해왔다. 그 안에 갇히게 된다면 먼저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될 것이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면 폐가 부풀면서 못이 흉부를 찌를 것이다. 살기 위한 행위가 죄수를 고통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피부 가까이서 나를 찌르는 못과 같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면 무엇도 나에게 닿지 않게 철저히 고립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위리안치가 내 꿈이었던 이유다. 그런데 탱자나무는 아주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과실수이고 향기도 좋지만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아 기껏해야 약재로나 쓸 뿐이다. 결국 탱자나무 두른 집은 나를 찌르는 가시로부터 약간의 거리만 확보했을 뿐이니 그건 조금 넓은 아이언메이든이나 다름없었다.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내가 아주 작아졌거나. 어느 쪽이든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신통한 예언가인 나는 결국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오래도록 생각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꺼리고, 기대하지 않고, 단념하게 되었고 마침내 나를 유배길로 내몰았다. 나는 말을 잘 하는데, 탱자나무 안에서는 할 수가 없다. 울타리에 두른 탱자나무는 안팎을 찔러 모두를 물러서게 만들어 내 말을 들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달변에 비해 상상력은 빈약하기 그지없었고 그 댓가로 꿈을 이룬 다음에야 알았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꿈을 다시 꿔야 한다. 위리안치 정도 극형을 받는 자는 중앙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 있을 것이다. 중앙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보수주인이 그렇게까지 성실할 리 없다. 그 허술한 틈을 이용해 울타리를 감싼 탱자나무를 걷어내야 한다. 걷어내지 못한다면 탱자를 귤로 바꿔야 할 것이다. 탱자와 달리 귤은 먹기에 좋다. 탱자나 귤이나 꽃은 비슷하니 어떤 향기를 퍼뜨릴 것인가. 해배의 순간을 상상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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